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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ing sun above the blue East Sea DONGHAE 해오름의 고장 동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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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문화마을

약천문화마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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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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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재지(네비주소)마상천길 22
  • 문의처공보문화담당관(☎033-530-2441)

동해시 망상동 삼곡 약천마을은 약천 남구만이 '동창이 밝았느냐'의 시조창작무대를 돌아보며 한편의 시조를 감상할 수 있는 테마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초구동에서 마성천을 건너 망운산이 있는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 매밀 마을과 댓마을 사이에 위치한다. 현재 삼곡동 중에서 가장 큰 마을인데, 이 마을을 통칭하여 심곡으로 부르기도 한다.

소개

약천사

약천 남구만 선생이 귀양생활(1년)을 하는 동안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아 오다가 임금의 용서를 받아 떠난 후 후일 이곳 주민들이 약천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약천사를 건립하였으며, 현재의 건축물(사당, 동·서재, 토담)은 동해시에서 복원한 것이다.
  • 건립 : 김수붕(金壽鵬 1682~1750)
  • 약천사는 일명 노곡서원(魯谷書院)으로 기록되어 있음
  • 영조 17년(1741) 철폐 순조 1년(1801)중건(김수붕 후손 김종정) 철종 6년(1855) 강릉신석(납돌)으로 이전

약천 남구만

조선 인조 7년 ~ 숙종 37년(1629~1711)때의 인물로 조선 숙종때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 자는 운로, 호는 약천 또는 미제. 시호는 문충으로 조선개국 공신 남재의 후손이며 소론의 중심인물이다. 1651년(효종2년) 사마시를 거쳐 1656년 문과에 급제, 1668년 전라도 관찰사, 1674년 함경도 관찰사, 1680년 병조판서, 1687년 영의정을 지냈으며, 1689년 숙종기사(肅宗己巳)에 망상 심곡으로 유배되어 1년간 은거하였다.

사료검토내용

문헌(조선 상신사 임영지) 및 구전에 의하면 약천 남구만 선생(1629~1711)이 망상동 심곡마을에 유배되어 1년간 은거한 사실이 입증됨. 우리나라 최초의 고시조집인 청구영언(영조 4년 김천택이 편찬)에 ‘동창이 밝았는냐...’라는 시조는 약천 남구만 선생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시작(時作)연대는 기록이 없으며 최근 강원민속학회의 발표에 의하면 ‘동창이 밝았느냐...’라는 시조의 작품배경은 망상동(심곡)으로 밝혀지고 있다.
  • 약천문화마을에서는 매년 남구만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전국시조경창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며 약천남구만 얼 선양 사업계획의 일환으로 시조체험관을 건립중에 있다.

전설

마을 앞 논 가운데에 샘이 여럿 있다. 옛날 남쪽의 어느 선비가 신병이 있어 각처에 돌아다니며 물 좋은 곳을 찾다가 이 곳 물을 먹고 몸이 다 나아 후에 서울에서 큰 벼슬을 하였다하여 약천(藥泉)이라 한다. 그 후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이 자신의 호와 같은 이 마을에 들어와 일년 반 동안 머물렀다. 그 후 그의 문화생들과 주민들이 노곡 서원을 세우고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는데, 약천 남구만의 영정을 모신 영당이 있어 영당말이라고도 한다.
수량이 풍부한 샘이 많은 것을 풍수설에 따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약천 마을은 댓말에서 내려온 산줄기와 매밑 마을쪽에 있는 보름재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좌청룡 우백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좌청룡의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것이 보름재인데, 이것이 거북 모양을 하고 있다. 거북은 물 속에 살며 물을 다스리는 짐승이므로 이 마을에 샘이 많고 또 좋다 한다.

찾아오시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