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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ing sun above the blue East Sea DONGHAE 해오름의 고장 동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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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동 도요지

이로동(泥老洞)도요지

이로동(泥老洞)도요지

  • 시대조선시대
  • 소재지이로동 700-1번지 일원
  • 문의처공보문화담당관(☎033-530-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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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로동(泥老洞)도요지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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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도기소가 1이니 부(府)의 북쪽 이리(泥里) 상동(上洞)에 있다."라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 와요지(瓦窯址)는 이로동의 원통마을에서 동해골재채석장으로 들어가는 소로의 우측 구릉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2003년 9월 국도 42호선 대체 우회도로 확장 공사 시 구릉 하단부가 절개되면서 가마가 노출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2004년 발굴조사를 통해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기와 가마 3기와 2차례에 걸친 폐기장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주변 지역에도 기와 가마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마터에서 출토된 받침용 기와는 전형적인 수파문(水波紋) 모티브에 장식문을 복합한 문양이나, 반원형 집선문(集線文)을 시문한 뒤 무문(無文)으로 정면하였다. 태토(胎土)는 소량의 사립(모래알)이 섞인 비교적 정선된 점토이며, 대부분 회청색으로 경질소성(硬質燒成)된 것이다. 이로동 기와가마터는 황갈색의 생토(生土)층을 굴착하여 만든 지하식 굴가마(등요-登窯)로 아궁이, 연소실, 소성실, 연도시설로 구성된 가마 구조이다.

가마의 내벽에는 거친 굴착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가마의 축조과정을 잘 알 수 있고, 가마 내부에 채운 기와들의 와적(瓦積)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불가마 작업 후 막음불을 지피기 위해 아궁이 및 분구(焚口)를 모두 막은 상태가 확인되어, 기와가 제작되는 일련의 작업과정을 알 수 있어, 조선시대 기와의 제작과 가마 운영의 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2005년 4월 22일에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지의 정확한 현상은 알 수 없다.

찾아오시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