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vaScript 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일부 콘텐츠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Rising sun above the blue East Sea DONGHAE 해오름의 고장 동해시


동해무릉계곡

동해무릉계곡

  • 지정번호명승 제37호
  • 지정일2008. 2. 5.
  • 규모/양식10필지 / 1,534,669㎡
  • 소재지삼화로 538(삼화동)
  • 문의처동해무릉계곡 관리사무소(033-539-3700~1)

소개

  • 소개
  • VR보기
  • 블로그

신선이 노닐었다는 동해무릉계곡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우는 동해무릉계곡는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현존하는 선경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태고의 신비와 전설 속에 동해무릉계곡은 이 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관광명소이다.

고려시대에 동안거사 이승휴가 천은사의 전신인 용안당에 머물며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선조때에 삼척부사로 재직 하고 있던 김효원이 제명 하였다고 한다.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동해무릉계곡는 수많은 관광객을 도취시키며,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명승지로,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삼척부사나 토포사들의 이름이 각각 10명 이상 새겨져 있다.

무릉중대반석(약칭 : 무릉반석)

옛 풍월객들이 수도 없이 이곳을 찾았으며, 이름을 천추에 남기려는 선비들은 반석에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옥호거사가 쓴 초서 12자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1958년 세워진 금란정에는 계원들의 시구 현판이 걸려있고, 북쪽 삼화사의 풍경소리 은은하다.

무릉중대계곡

별유천지를 방불케 하는 중대 계곡, 두타산과 청옥산을 사이에 둔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동해무릉계곡는 용추폭포의 맑은물과 병풍 같은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눈내린 비경을 한층 더 연출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두타산성

두타산성은 삼국시대 진흥왕(550)에 지어졌다.방어와 통치의 거점으로 잡았으며 식량의 저장고 역할도 하였다. 두타산 중허리는 파사왕(102)에 쌓았다는 석성이 유적으로 남아있다 이 석성은 길이8.725척 높이 5척이라 한다. 문간치는 조선 태종갑오(1414). 삼척부사 김맹손이 쌓았다고 한다. 길이는8.725척 높이는 6 척이라 한다.

금란정

한말까지 유림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유학강론에 전념하였으나 한일합병을 당하여 폐강하기에 이르자 이에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란계를 결성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기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헌들에 의해 제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하고 1949년 봄에 건립하였고 1956년 9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호암소

무릉계곡관리사무소 아래쪽으로 205m쯤 아래 계곡에 있는 소. 소양옆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옛날 호랑이가 건너뛰다가 빠져 죽은 소라는 데에서 유래한다. 호암소는 김효원(金孝元)이 임경대(臨鏡臺)로 개명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전설ㆍ옛날 도술에 능한 고승이 이 곳을 지나다가 호랑이가 해치려 하여, 고승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소를 훌쩍 건너 뛰었는데 호랑이가 뒤따라 건너뛰다가 고승의 발길에 채여 소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소 옆의 암벽에 虎岩(호암)이라 새겨 놓은 글씨가 남아 있어 흔히 호암소 대신 호암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이 글씨는 삼척부사로 왔던 미수 허목(許穆)의 글씨라고 전하는데, 호암은 김효원의 두타산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3~4m 위에 中臺洞門(중대동문)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오혁(吳奕)의 글씨라는 설이 있다.

찾아오시는 길